20세기 말, 대한민국은 IMF 사태를 겪게 되고 사회 전반에서 구조 조정이 시작됐다. 기업들은 M&A(기업 간 인수 합병)를 진행했다. 기업 M&A 과정은 마치 첩보 영화의 내용처럼 비밀스럽게 진행된다. 사람들은 합병 과정에 주목하지만, 사실 M&A는 이후가 더 중요하다. 업종이 같다고 해도 서로 다른 두 기업의 인위적 결합은 심각한 거부 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M&A는 인체 봉합 수술과 비슷하다. 팔, 다리, 몸통 등 서로 다른 신체 각각의 부위를 하나로 연결한다. 그리고 통일된 유기체로 부활시키고 원활한 혈액 순환과 신진대사가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신체의 각 부분을 봉합하는 과정은 서로 다른 조직을 합치는 '물리적 결합'이다. 신체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조직을 하나로 만드는 과정은 '화학적 융합'이다. M&A는 이 '화학적 융합'이 중요하다.

1999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한빛은행으로 합병됐다. 이후 지금의 우리은행으로 은행명을 바꿨다. 두 은행의 서로 다른 제도와 규범은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각각 오랜 역사와 기업문화를 가진 두 조직간 융합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당시 한빛은행은 조직의 '화학적 융합'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중 하나는 '백두대간 산행'이다. 은행의 8천여 명 직원들이 2박 3일간 진행되는 산행에 참가했다. 직원들은 5명 또는 10명으로 팀을 구성했고, 식량과 물을 짊어지고 백두대간을 올랐다. 이 험난한 산행에는 에베레스트를 등반한 허영호 대장도 참여했다. 그의 인솔하에 많은 팀이 백두대간의 각 구간을 올랐다.

산행에 참여한 팀원들은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려움이 있을 때는 함께 힘을 합쳐 돕고 의지했다. 서로 다른 조직의 구성원들이 조금씩 신뢰의 기틀을 쌓았다. 2개월 간 진행한 백두대간 산행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백두대간 산행 이후 한빛은행은 조직 융합에 자신감을 얻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은행의 전산시스템 통합을 시도했다. 합병 이후 직원들은 각자 사용하던 전산시스템을 버리고, 새로운 전산시스템을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새로운 시스템의 불안정성과 훈련 방법이 문제였다. 1,000여 명의 직원을 모으고, 새롭게 추가되는 내용을 그때마다 교육한다는 것은 시간적, 물리적 제약이 많았다.

한빛은행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게이미피케이션을 활용했다. '화학적 융합'의 두 번째 방법인 '백두대간' 게임이다. '백두대간'은 직원들의 교육을 위해 새로 개발된 게임이다. 게임은 질문이 나오면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실제 산행처럼 각자 필요한 물과 식량을 소지한 채 시작한다. 게임에는 중요한 조건이 하나 있다. 정상에 도달하고 다음 산으로 이동할 때, 낙오자가 있다면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 산행을 잘한 직원은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데, 각 지점장은 이 아이템을 낙오할 법한 직원에게 나눠주면서 팀의 협동심을 독려했다.

'백두대간'은 매일 상황판에 각 지점의 위치를 공개했다. 이를 활용해 각 지점 간 경쟁을 유도했다. 직원들은 총 3개월 동안 아침과 저녁 30분씩 게임에 몰입했고,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최초로 등정을 완료한 지점은 단체 포상을 수여했다. 백두산을 최초로 등정한 지점과 각 구간을 최초 등정한 우수직원에게는 실제 백두산 3박 4일 여행권과 중국 실크로드 여행권을 지급했다.

'백두대간' 도입 초기에는 관리자나 임원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자발적으로 게임에 참가하는 직원들을 멀리서 바라 보기만 했다. 하지만, 그 결과가 개인과 팀, 지점 평가에까지 영향을 미치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부하 직원들에게 게임 방법을 물어보면서 열의를 보였다. 마치 인터넷 보급 초기, 언론사 관리자가 신입 사원에게 자리를 내주며 사용방법을 익히던 때와 비슷하다. '백두대간'에는 동기부여와 성취, 레벨업 등 다양한 게임 메커니즘이 담겨있다. 이를 통해 직원들이 새로운 업무 방식을 익히고, 온라인 시스템에 대비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국내 게이미피케이션에 대한 논의는 최근에서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백두대간'과 같은 사례를 보더라도 벌써 20년 전부터 사용되고 있었다.  해외 게이미피케이션 사례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적용되는 분야 역시 직원 채용이나 인력 배치 및 교육 훈련과 같은 HRD 분야다. 그만큼 게이미피케이션의 파급력이나 활용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특히 광고, PR 분야에서도 게이미피케이션의 잠재력은 무한하다. 게이미피케이션은 젊은 세대의 기호 반영이라는 소극적 평가에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 4차 산업 사회를 이끌어갈 원동력이 광고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전환은 디지털 리터러시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미디어 리터러시를 거쳐 게임 리터러시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게이미피케이션은 의료, 보건, 행정, 경영 등 다양한 산업 분야로 빠르게 확산할 것이다. 이제 다가오는 게이미피케이션 시대를 위한 게임 리터러시의 확산에 대비하고 주목해야 한다.

김일철 하이터치 휴먼 랩 소장, 동의대학교 명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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