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의 개념과 용어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등장한 만큼 다분히 전투적이다. 목표나 타깃 혹은 전략과 전술, 포지셔닝 등등이 그러하다. 피아를 구분하는 적대적 관계를 전제한다.
시간이 지나 시장에서의 헤게모니가 '생산자(seller)'에서 '소비자(buyer)'로 전환됨에 따라, 고객 만족을 위한 고객 중심적 사고가 중요해졌지만, 용어는 여전히 바뀌지 않는다. 공수 전환에 따른 사고의 전환이 뒤따르지 못하는 이유다. 고작, '탈대량(Demass)'이니 '프로슈머(Prosumer)'니 하는 정도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소비는 삶의 주체로서의 경제 활동을 의미한다. 곧 스포츠에서 경기를 뛰는 선수요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다. 오롯이 자신이 확보한 정보와 판단을 가지고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행위요 삶이다.
<몰입>의 저자 황농문은 스포츠나 온라인 게임을 할 때의 행위는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데, 그 이유는 행위 자체가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면 그에 대한 구동력이 스스로 만들어진다. 때문에 별다른 노력 없이 그 행위를 자동으로 행한다고 하여 이를 ‘자기 목적성(autotelic)’이라고 명한다. 즉, 외부의 다른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보다는 일 자체가 좋아서 하는 사람은 '자기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헝가리의 심리학자 '칙센 미하이는' 자기 목적에 충실한 것을 두고 ‘몰입(flow)'이라고 정의했다. '자기 목적성'은 주체성의 다름 아니다. 게임에 몰입하는 행위는 자기 목적에 충실한 것이며 이때 가장 자기다움이 발현된다. 곧, 몰입된 플레이어는 그 자체로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자기다움, 곧 정체성을 어떻게 투영시키는가 하는 것이 곧 게임의 승패를 좌우하는 만큼 게임화의 주요 고려 요인이 되어야 한다.
책 <우리는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 에서는 다음과 같은 예를 제시한다. 플레이스테이션과 같은 게임기의 등장으로 경영난에 빠진 레고(Lego)는 처음에는 이를 모방한 게임용 부품을 출시한다. 하지만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하자 인류학자들에게 의뢰한다. 이들은 제품이 아니라 레고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 곧 플레이어에 주목한다.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하는가? 가 아닌 아이들에게 ‘놀이’란 무엇인가? 라는 본질적인 질문에서 그 핵심을 파악하고 ‘다시 블록으로’의 복귀를 추천, 회복에 성공한다. 레고라는 놀이하는 플레이어로서의 아이들의 정체성에 주목한 결과다.
앞서 언급한 '자기 목적성'은 '자기 주도적'과 밀접하다. 곧,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의 판단 기준은 자기의 신념, 가치, 믿음, 의미에 기초하므로 몰입과 중독의 갈림길은 자기 정체성을 여하히 확립하느냐이다. 간혹, 미성년 혹은 미성숙자의 경우 올바른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확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는 개인차는 있겠으나 주변 환경과 신뢰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그동안은 '자기 주도 학습(Action Learning)'의 실패 이유를 모순된 강요 때문으로 파악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학생들에게 갑자기 자율적으로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수업이 강요되자 대학에서는 각자의 집에서 예습을 먼저하고, 학습을 나중에 수행하는 '거꾸로 학습(Flipped Learning)'이 일시에 시작됐다. 놀라는 것은 교수 쪽이었다. 영화 기생충의 대사처럼 학생들은 이미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던 거다.
방통대가 시작된 시기나 EBS를 비롯한 인터넷 강의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비대면 수업과 소통은 단지 아날로그 세대에게만 낯선 일이다. ‘게임화’는 ‘게임’에 대한 편견 제거 과정의 다름없다. 대면에 의한 기성세대의 권위주의를 내려놓으면 플레이어의 정체성은 한층 성숙할 것이다.
김일철 하이터치 휴먼 랩 소장, 동의대학교 명예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