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골목에서 딱지치기하던 꼬마들이 다툰다 싶더니 어느새 어깨동무를 하고 골목을 빠져나간다.
국회의원들이 단상을 점령하고 의사봉을 빼앗고 서류를 집어 던지며 몸싸움을 하더니 얼마 않 있어 서로 웃고 악수하며 의사당 계단을 내려온다.
이건 뭐지? 애들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어른들이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한 건가?
지나치게 희화화 한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 모두가 놀이인 셈이다.
일찍이 한 세기 전에 하이징아는 호모 루덴스(1938)라는 책을 통해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라고 일갈하지 않았던가? 근자에 들리는 '폴리테인먼트'니, '에듀테인먼트'니 하는 합성어들이 함축하는 의미는 이를 대변한다.
논객 진중권은 촛불 집회조차도 멀티 유저 게임으로 풀이한다. 문자 매체 시대의 역사의식이 영상매체 시대에 들어서 서사의식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놀이니, 오락이니 게임이니 혹은 영어로 play나 entertainment 또는 recreation 등의 어원이나 언어적 해석은 차치하고 인간이 추구하는 삶의 궁극 목표가 행복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놀이는 필수적인 요소다. 단지 놀이 그 자체를 즐기느냐 혹은 그 결과에 매달리느냐의 문제다.
게임의 구성 요소로 혹자는 미적 요소, 기술, 이야기, 메커니즘의 네 가지를 또 다른 사람은 성취, 보상, 직위와 자랑, 경쟁, 도움 등 여섯 가지를 꼽는 등 매우 다양하다. 이는 아직 학문적으로 정립되지 않았다는 미숙함보다는 게임의 개발이나 적용의 목적이 놀이냐, 개발이냐 혹은 경영이냐 등의 용처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요점은 놀이가 인간의 근본 속성이라면 왜 이제 와서 게이미피케이션 곧 게임화가 주목받느냐 하는 문제다. 이를 전자 오락게임의 연장 선상이나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때문이라고 파악하는 건 다소 근시안적 해석이다.
산업사회가 정보사회(4차산업혁명)로 전환되면서 나타나는 가장 큰 변화는 개별화(individualization) 혹은 개성화(personalization) 현상으로 풀이할 수 있다. 단순화(Simplification) 표준화(Standardization) 전문화(Specialization)로 압축된 소위 ‘3S 원칙’은 소품종 대량 생산을 추구하던 산업사회의 규모의 경제를 위해서는 절대적인 철칙이었다. 여기에 개인이나 개성이 설 자리는 없다. 단지 연령, 성별, 소득, 학력 등에 따라 평균화된 집단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후기 산업사회에 들어선 오늘 다품종 소량 생산은 개인별 맞춤 주문(Customization)까지 가능하게 한다. 이제 ‘남들과 다르면 안 되는 세상’에서 ‘남들과 같으면 안 되는 세상’으로 바뀐 셈이다. 불과 2~30년 전만 해도 공무원들은 물론 직들조차도 마치 군인들처럼 유니폼을 입은 듯했다. 하지만 요즘엔 출근길에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집에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세상이다.
불특정 다수의 대량에서 특정 소수의 탈 대량으로 이행하고 있다. 그 과정에 개인화와 개성화가 단계별로 자리한다. 그 차이는 정체성(Identity) 존립의 유무다. 얼마만큼 자기 주도적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는 ‘몰입하다’와 ‘중독되다’로 표현되듯이 놀이가 주도적이냐 혹은 수동적이냐의 문제로 집약될 수 있다. 바로 이 차이가 프로 게이머와 게임 중독자를 구분 짓게 만든다. 분야를 막론하고 여하히 플레이어의 정체성을 담보하느냐가 게이미피케이션과 연관된 이들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김일철 하이터치 휴먼 랩 소장, 동의대학교 명예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