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Co-Creation은 기업이 제품 제작 혹은 프로젝트에 사용자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작업을 진행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일반 대중이 기업의 인력을 대체하는 '크라우드 소싱'과는 약간 다른 개념이다. Co-creation은 사용자들에게 금전적인 보상 대신, 과정의 참여를 통해 제품의 특성이나 프로젝트의 발전 방향을 보다 사용자 친화적으로 전개할 수 있다.

'코카콜라'와 록밴드 '마룬 5'가 24시간 동안 SNS를 통해 사용자들의 의견을 받아, 신곡 ‘Is There Anybody Out There?’를 만들었고, 이 곡의 다운로드 횟수가 아프리카의 복지사업으로 이어진 이야기는 대표적인 기업과 사용자 간의 Co-creation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업의 제품 향상에서의 Co-creation이 아닌, 소규모 그룹에서의 원초적인 Co-creation 관점에서 나의 경험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편집 디자인에서의 Co-creation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던 기간 중 3년은, 캐나다의 지역 커뮤니티에서 편집디자이너로 재직하며, 인쇄매체(신문, 주간지 등)의 발간 작업에 참여했다. 돌이켜보면, 이때의 작업 형태가 아주 기본적인 Co-creation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쇄매체의 작업 형태는 상당히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이다. 인쇄매체의 성격은 편집장 혹은 책임자의 의도에 따라서 결정되며, 이 성격에 맞춘 기사와 칼럼으로 매체의 내용이 채워진다. 광고 역시 콘텐츠 중 하나로 해당 매체를 풍성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광고는 매체의 성격을 따라가지 않는다.

편집디자인에서 디자이너와 독자의 Co-creation은 사실 꽤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물론 이것은 최근에 정립된, ‘소비자가 기업 그 자체’가 되는 Co-creation의 개념보다 훨씬 간소하고 원초적인 개념이다.

보통, 편집 디자이너는 해당 매체(잡지, 신문, 서적 등)의 성격에 따라 레이아웃을 디자인하고, 레이아웃의 컨셉에 맞도록 콘텐츠를 채워 나가며 완성한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콘텐츠의 기본이 되는 글이나 기사(article)를 직접 창조(creation)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은 독자(audiences)나 필진(writers)이 기사(article)의 원고를 창조하여 기고하고, 디자이너는 그들의 원고를 기반으로 디자인을 추가하여 컨텐츠를 창조한다.

이 과정에서 디자이너는 각자의 시각으로 원고를 해석하고, 알맞은 옷을 입혀 나가며, 때에 따라서는 글의 작성자와 디자인의 방향을 협의하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는 매체에서 독립된 작품으로 존재하며, 이 과정은 가장 기본적인 공동 창조의 형태를 띤다.

또한, 이 공동작업에 참여한 소비자들은 매체를 이용하는 다른 소비자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고, 명성과 자기만족이라는 보상을 얻는다. 디자이너와 매체(기업)는 소비자들의 참여로 생성되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매체의 영역을 넓혀 소비층을 확대할 수 있다. 이 과정은 곧 매체를 지속할 수 있는 근간이 되며, 결과적으로 매체의 발전이라는 보상을 얻을 수 있다. 

편집 디자인의 공동창조는 다양한 참여자로 인해 여러 가지 색을 띠게 된다. 디자이너로서는 매번 다양한 형태의 디자인을 생각해야 하므로 상당히 피로도가 높은 작업이지만, 다양성에서 파생되는 재미있는 창조를 경험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작업이기도 하다.

출처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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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소설' 프로젝트

한번은 지역 매체에서 일하는 지인과 함께, 떨어지는 매체의 수익을 늘리기 위해 로컬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법을 논의한 적이 있다. 꽤 많은 논의 끝에 우리는 매체에 참여하는 작가 및 독자들과 함께 일정한 기간의 '릴레이 소설’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나는 객원 디자이너로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참가자는 경력과 상관없이 사전 모집했다.

‘릴레이 소설’ 프로젝트의 진행방식은 이렇다. 먼저, 특정한 참가자에게 하나의 키워드에 맞춘 원고를 의뢰한다. 완성된 원고에서 다시 하나의 키워드를 선정하여, 매주 다른 참가자들에게 인계한다. 이렇게 키워드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하나의 장편 소설을 만드는 작업이다. 

기존의 작가들은 자신들만의 토픽으로 매체에 자유롭게 글을 기고했지만, 이 프로젝트에서는 참가자들, 특히 작가들은 예측할 수 없는 토픽에 맞춰서 원고를 작성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특히, 주로 꽃을 소재로 시를 쓰는 A 작가의 경우엔, 평소 자신이 잘 다루지 않는 주제인 과학기술을 키워드로 넘겨받아, 시가 아닌 소설 형태의 글을 작성해야 했다. 여행 이야기를 주로 쓰는 B 작가 역시, 문화에 관련한 키워드를 넘겨받아 자신의 특기인 여행기가 아닌 칼럼 형태의 글을 작성해야 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장르의 글들이 이어지며, 하나의 큰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상당히 색다른 형태의 전개를 끌어냈다. 하지만, 이 전개는 우리가 원했던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이 프로젝트의 편집 디자인 방향은 하나의 특정한 테마를 분리해서 조립하는, 일종의 ‘퍼즐’의 형태로 진행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어쨌든 ‘릴레이 소설’이라는 하나의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주 변화무쌍하게 달라지는 이야기의 흐름은 편집 디자인의 방향을 퍼즐이 아니라, 누더기를 기워 만드는 패치워크 형태로 변화되었다.

출처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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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기계적인 루틴처럼 편집 디자인을 해왔던 디자이너들이나, 타성에 젖어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 이 프로젝트는 신선한 경험이었고, 사용자와 사용자, 그리고 사용자와 디자이너의 예측할 수 없는 Co-creation을 통해, 정형화되지 않은 '날것'의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참가자들의 수준 차이를 간과하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작가와 비 작가 간의 이야기 전개나 마무리 능력의 차이가 있다 보니, 각 이야기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이것은 프로젝트가 다듬어지지 못한 채 투박하게 진행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하나의 통일된 주제나 장르 없이 중구난방으로 흘러갔지만, 적어도 사용자들에게는 Co-creation의 신선한 경험과 함께 높은 참여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로 인해 지역 커뮤니티 사용자들의 매체에 대한 관심도와 참여도도 높아졌고, 이를 통해 매체의 수익도 약소하게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자유로운 시도와 새로운 방향

출처 : freepik

‘릴레이 소설’ 프로젝트는 디자이너에게는 반복적인 작업에서 벗어나 조금 더 자유로운 디자인을 시도할 기회를 제공했고, 매체는 기존의 방향이나 성격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물론, 이 프로젝트의 결과는 우리가 원했던 목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나와 매체가 예상했던 프로젝트의 진행과정과 실제 참여자들이 과정을 수행하는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었고, 키워드를 넘겨주는 사용자 간의 협력 역시 아름답고 깔끔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이 원초적이고 투박했던 공동창조 작업을 통해 얻은 장점이 단점보다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나은 Co-creation을 위한 다음과 같은 방법을 생각할 수 있었다.

 

1. 프로젝트의 목표를 명확히 정의할 것: 나와 친구는 ‘릴레이 소설’ 프로젝트에서 목표를 확실하게 정의하지 않았다. 

2. 프로세스에 개입될 올바른 사용자들을 파악할 것: 예를 들어 릴레이 소설에 참여하는 작가, 주제, 장르를 통일했다면, 훨씬 깔끔한 이미지와 디자인의 전개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3. 고객이 프로젝트나 제품에 어떤 니즈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할 것: 아쉽게도 우리는 작가들의 동향과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위의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제품이나 시스템을 공동으로 디자인할 때, Co-creation 형태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기업이 예상하는 것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학습자 중심의 Co-creation

Co-creation은 기존의 반복 작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은 대부분, 하나의 장르와 주제에만 익숙했다. 작가 A와 B가 ‘과학기술’과 ‘문화’를 다루는 것은 새로운 것을 학습하는 것과 같았다. 새로움을 익히는 과정을 조직에서의 협업, 팀 구축, 학습의 관점에서는 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릴레이 소설’을 초심자(Beginner) 관점에서 접근해보면 어떨까? 앞서 언급한 실패의 원인을 보완한다면, 조직이나 교육환경에서는 좋은 접근법 중 하나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계산이나 연산, 매뉴얼에 담긴 따르는 업무가 아니라, 창의력을 요구하는 프로젝트에서는 참여자의 내재적인 동기와 상호협력을 더욱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마치 게임처럼 말이다.

하나의 조직 구성 과정을 RPG에 예를 들어보자. RPG에는 탱커, 딜러, 힐러 등 다양한 클래스의 플레이어가 참여한다. 파티에 소속된 파티원들은 서로의 특징은 어떤 것인지, 또 어떤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지 정보를 공유한다. 그리고 상호 협력해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 보상이나, 몬스터 처치를 파티의 목표로 설정한다. 어떤 것(아이템, 업적달성, 리더보드 등)에 더 비중을 둘 것인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 파티원들의 목표가(매체의 경우 완성된 콘텐츠) 누더기로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단순히 ‘참여만 하는 상태’ 또는 ‘내 것만 잘하는 상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함께하는 파티원들의 클래스와 스킬 능력을 파악하고 협력해야 강력한 몬스터를 쓰러트릴 수 있는 것처럼, Co-creation은 ‘게이미피케이션’을 활용해 그 효과를 더욱 증가시킬 수 있다.

전통적인 방식의 ‘교육자-학습자’의 관계, 보상이나 처벌에 의한 동기부여에 머물지 않는다. Co-creation을 하나의 게임처럼 활용한다면, 서로의 지식과 학습법을 공유하고, 상호 보완하는 자발적인 학습의 방법이 될 것이다. 숙련된 게이머들이, 초심자들에게 공략을 알려주는 것처럼 말이다.

‘매체’의 경우, 단기적인 목표(마감기한)가 설정되었기 때문에, 이런 과정이 계속되지 못했다. 하지만 교육이나 훈련과 같은 장기적인 프로젝트에서는, 지속적인 Co-creation을 통해 상호 보완적인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다. 여기에, 실수와 실패가 허용되고(편집디자인과 달리 학습에서의 공동창작은 마감의 위험이 없다), ‘배지’나 ‘포인트’대신, 참여와 협력이라는 원초적인 동기부여가 이루어진다면, 학습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비즈니스 관점으로 돌아와, 우리의 Co-creation의 결과물은 비록 ‘날 것’ 이기는 했으나, 디자이너, 작가, 사용자들은 자신의 분야와 영역을 확장하는 변화를 학습했다. ‘릴레이 소설’ 프로젝트가 오랫동안 진행되었다면, 분명 다양한 분야와 협업 방식의 지식이 향상되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레벨업을 할 시간이 있었다면, 매체는 더 다양하고 신선한 콘텐츠를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투박한 과정을 다듬으면서 필진의 역량을 높이고, 그리고 사용자들의 참여를 더욱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김현수 한국게임화연구원 교육부문장

김현수 부문장은 온라인 게임 개발사 '엠게임'에서 '온라인 봄버맨'의 기획자를 시작으로, 여러 회사를 거쳐 2009년에 NC 소프트의 '아이온' 프로젝트 기획팀의 일원으로 참여했습니다. 2012년 이후에는 캐나다로 이주하여, 프리랜서 그래픽/편집 디자이너로 일했습니다.

현재는 한국게임화연구원의 교육부문을 담당하고 있으며, 게이미피케이션의 보급을 위해서 경민대학교 게임컨텐츠 학과의 겸임교원으로 출강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영국의 게이미피케이션 매체 'Ludogogy'에 영문으로 송출되었습니다.

https://ludogogy.co.uk/a-co-creation-experience-in-editorial-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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