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미피케이션'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내의 많은 대기업이 '게이미피케이션'을 미래의 먹거리로 선언하며,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게이미피케이션'에 대한 대중의 관심 역시 높아지고 있다.
'게이미피케이션'은 성공사례만을 놓고 봤을 땐, 굉장히 효율적이고 혁신적이다. 기업의 업무 체계를 개선할 수 있고,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도 있으며, 소비자들에게는 더 좋은 브랜드 이미지를 남길 수 있다. 게임이 가진 요소, 그것도 '긍정적인' 요소만을 잘 정제해서 활용할 수만 있다면, 최고의 결과를 끌어내는 '종합 선물 세트'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성공적인 '게이미피케이션'을 위해서는 많은 조건을 고려해야 하고, 제대로 된 설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기업의 구조, 직원들의 업무 방법, 다양한 인과관계, 피드백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맞물려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게이미피케이션을 왜 해야 하는지'의 '근본'을 생각해야 하고, '잘 되겠지'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버려야 한다.
'게이미피케이션'은 무조건 성공하지 않는다. 아무런 영향이 없을 수도 있다. 오히려 '게이미피케이션'으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문제점이 발생하기도 한다. 조용히 지나간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잘못된 '게이미피케이션'은 단순히 '실패! 다음 기회에'로 끝나지 않는다. 효과가 높은 만큼 부작용도 크다.
그렇다면 과연 설계가 잘못된 '게이미피케이션'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리고 '게이미피케이션'의 막연한 기대감에는 어떤 함정이 숨어있는지, 그 최악의 결과들을 한 번 상상해 볼까 한다.
경쟁의 사각지대
'게임이 아닌 영역에 게임적인 요소를 적용'만 시킨다고, 모든 게 긍정적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어떻게든 잘 되겠지' 식의 접근은 독이 된다.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게이미피케이션'은 기존 업무의 진행을 더디게 할 수도 있고, 생산성을 더 떨어트릴 수도 있다.
특히 '게이미피케이션'의 '경쟁'을 다룰 때는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경쟁'은 의도했던 것과 다른 방향과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경쟁을 활용해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성과를 높이겠다'라는 접근은 이론상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론이 현실에 적용되는 과정에서는 많은 문제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게이미피케이션'도 예외는 아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대형 마트의 계산원들을 대상으로 '게이미피케이션'의 '경쟁'을 활용할 예정이다. 직원들이 계산한 물건의 개수, 응대한 고객의 수를 종합해서 포인트와 배지를 주는 방식이다. 직원들은 획득한 포인트를 마트의 물건으로 교환할 수 있다. 매주 특정 배지를 획득한 직원, 가장 많은 포인트를 얻은 직원을 선정한다. 이 직원에게는 특별 격려금과 휴가를 제공한다.
이때 '게이미피케이션'의 목적은 '선의의 경쟁을 통해 직원들의 업무 효율을 높이고, 적절한 보상을 통해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이 실제로 현실에 적용된다면 어떨까?
직원들 더 많은 물건, 더 많은 손님의 계산을 처리하는 것에 집중할 것이다. 문제는 계산 이외의 다른 업무를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교환이나 환불, 매장안내 같은 다른 업무는 포인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목표달성을 위해 불필요한 과정은 무시해버리는 결과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계산의 '정확도' 역시 떨어질 것이다. 업무의 목적이 '더 많은 물건과 더 많은 손님'이 되어버린 순간부터 오로지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보다 더 많이' 에 집중하게 된다. 경쟁이 과열되면 이런 부작용은 계속 증가할 것이고, 고객의 불만도 늘어갈 것이다. 마트의 평판도 점점 하락할 것이다.
'경쟁을 통한 동기부여'는 많은 업종에서 추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 목적이 오로지 생산성 향상과 효율성에만 초점이 맞춰진다면, 동기부여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성과를 위한 '채찍'으로 바뀔 수 있다. 이 채찍을 잘못 휘두르면 기존의 업무 체계가 흔들릴 수도 있고, 직원들이 의욕을 잃을 수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예상하지 못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게이미피케이션'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고 해서, 그것이 꼭 예상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한 경쟁과 동기부여'라는 목표를 현실에 적용할 때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특히 합의나 조율을 무시한 채 '선의의 경쟁이란 원칙적으로 옳은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영업직이나 생산직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한 영업팀에서 '현재 가장 많은 실적을 올린 직원을 공개합니다! 다음 사업 아이템은 가장 좋은 실적을 달성한 직원의 의견을 바탕으로 선정하겠습니다!'라는 '게이미피케이션'을 활용하기로 한다. 참여하는 모든 직원의 실적은 실시간으로 반영되고, 순위가 나타난다. 목적은 '선의의 경쟁을 통한 실적 향상'이다. 게임을 좋아하는 인간의 본능,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원초적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좋은 성과를 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몇몇 소수의 우수한 직원들끼리 경쟁하게 되는 '그들만의 리그'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보상을 노리는 상위권, 혹은 살아남기 위한 하위권은 열정을 보일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다수의 중위권이다.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EPL'을 떠올려보면 그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빅클럽'이라고 불리는 구단은 시즌마다 우승 경쟁을 한다. 리그의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다투는 상위권의 팀들에게는 승점 1점이 소중하다. 'BIG 4' 혹은 'BIG 6'라 불리는 강팀들은 늘 상위권에 머문다.
상위권보다 더욱 치열한 것은 잔류를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강등권의 팀들이다. 잔류만 한다면 우승은 다음 시즌에도 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팀이 2부 리그로 강등한다면 다시 승격한다는 보장은 없다. 넷플릭스 시리즈 '죽어도 선덜랜드'를 본 사람이라면 그 어려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챔피언스리그'도, '유로파'도 강등도 상관이 없는 중간에 있는 팀들이다. 리그에 참여하는 20개의 팀 중 절반 이상이 이 상황에 해당한다. 시즌 후반부의 경기를 보면 가끔 동기를 잃은 선수들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경기에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나만 살아남겠다. 몸값 올려서 이적하겠다'라는 전략을 보여주는가 하면, 부상을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움직임만 보여주는 선수들도 있다. 말 그대로 '안 잘릴 정도로 뛰는 척만 하는 것이다.
게이미피케이션은 '디지털 채찍'이 아니다
한 리조트의 세탁소 직원들은 수천 장의 시트, 담요, 수건, 이불을 거둬서 청소하는 작업을 한다. 리조트의 세탁물을 수거하고, 처리하는 일은 성취감이 있거나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직원들의 업무를 더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관리자는 '게이미피케이션'을 활용한다.
방법은 직원들의 업무량에 맞춰 신호등처럼 각각의 색상을 부여하는 것이다. 가장 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직원의 이름 옆에는 초록색 불이 들어온다. 상대적으로 속도가 늦어지는 직원은 노란색 불이 들어오고, 가장 느린 직원은 빨간색 불이 들어온다.
직원 간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고, 반복적이고 지루한 작업을 게임처럼 느끼게 만들기 위한 목적이다. 직원들은 점점 더 빠르게 세탁물을 수거해 세탁기에 투입했다. 업무의 효율성이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직원들은 동료들이 얼마나 빨리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있는지를 계속 의식하게 된다. 서로의 작업량을 감시하기 시작했고, 점점 더 경쟁이 치열한 일터로 바뀐다. 심지어 일부 직원은 일반적인 속도로는 관리자를 만족시킬 수 없으리라 생각해 안전 수칙이나 절차를 무시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업무를 빠르게 진행할 수 없는 임신한 직원, 신입직원, 나이가 많은 직원은 초록색 불이 들어오지 않자 좌절하기도 했다.
'게이미피케이션'이 오히려 직원들이 의욕을 잃게 만든 것이다. 심지어 직원들은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했고, 자리를 비울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우는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직원들의 재미와 동기부여를 위한 목적의 게이미피케이션이 직원들을 계속 움직이게 하고, 정신적으로 압박하는 장치, '전자 채찍'이 된 것이다.
'당근'을 기대했는데, '채찍'이 되어버린 사례다. 위에서 언급된 리조트는 '디즈니랜드'다. 실제로 일어난 이 일은 '게이미피케이션'이 잘못 적용되었을 때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해외에는 성공적인 게이미피케이션 사례도 많지만, 이처럼 잘못된 결과가 발생한 사례도 많다.
잘못 적용된 '게이미피케이션'은 직원 간의 소통과 협동을 사라지게 하며, 당연히 따라야 할 지침과 안전 수칙을 생략하게 만든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여기에서 피해를 보기도 한다. 물론, 잠깐의 생산성은 높아질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직 전체에 많은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저 'I' 에요
'MBTI'에서 'I'의 성향인 사람의 특징은 내적임, 정적임, 침착함, 조용함 같은 활동에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한다. 먼저 나서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떤 활동을 하는 것보다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걸 더 선호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이런 'I' 성향의 사람들에게 경쟁은 그 자체만으로도 부담이 될 수 있다. 'MBTI' 에서도 개인의 성향을 16가지로 나누는데, 실제로 직장의 구성원은 나이나 성별, 경력에 따라 더 다양한 성격, 그러니까 '회사에서만 사용하는 캐릭터'나 '비즈니스 가면'의 성격은 더 다양할 것이다.
그리고 경쟁이라는 요소를 일종의 'PVP'처럼 받아들이고, 좋아하지 않는 직원도 있을 것이다. '경쟁을 통한 동기부여'는 업무를 'PVE'로 생각하는 직원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자신의 직무 능력이 수치화되어서 남들과 비교된다는 것, 그리고 모두에게 공유된다는 것. 이것은 어떤 사람들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서양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보이는 것이 미덕일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겸손'이 미덕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처럼 이름이나 포인트 같은 것이 표시되는 방식 때문에, 오히려 성과와 실적을 감추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게이미피케이션'으로 인한 '경쟁'은 이처럼 잘 유지되던 '팀워크'를 망쳐놓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그 어긋난 균열을 다시 고치는 것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또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피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자기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직원들까지, 단순히 '배지나 포인트에 관심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낙인을 찍는 일은 없어야 한다.
"BIG BROTHER IS WATCHING YOU"
'디즈니랜드 리조트' 사례에서는 또 다른 문제점이 있다. 경영진이 직원들의 생산성을 감시한 부분이다. 직원들이 하루에 처리한 업무량을 정리하고 추적했다는 점에서 '게이미피케이션'이 '감시'의 도구로 사용된 도구를 활용된 것이다.
업무에서 '감시'라는 단어를 반기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겉으로는 보안을 유지하고, 생산성을 확인하기 위한 '게이미피케이션'으로 포장하지만, 사실 진짜 의도는 직원들의 활동을 감시하는 '보스웨어(Bossware)'로 사용할 수도 있다.
기업이 '게이미피케이션'을 사용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이익과 연관되어 있다. 직원들의 업무 상황을 계속 관리 감독하는 것은 기업 처지에서 생각했을 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공개적인 절차나 합의가 없는 '게이미피케이션'은 그 본질을 악용하는 것이다.
직원들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개선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그 '통제권'이 어디에 있는지도 중요하다. 참여하는 개개인이 선택과 활동을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게이미피케이션'은 개인의 목표를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설정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단순히 참여할 수 있는 '판'을 깔고, '관리자'만 세워둔다고 해서 그것이 올바로 유지되는 게 아니다.
모두 극단적인 예시만을 설정한 이유는 '게이미피케이션'이 ‘대박 한방’을 가져다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너무 극단적이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이 극단적인 사례들이 사실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기반으로 각색한 것이다.
‘게이미피케이션’은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많은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순 있지만, 기존의 구조 자체를 완전히 바꾸거나 새로 구성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인간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고, 특히 조직 내에서의 개인은 ‘또 다른 나’ 라는 일종의 캐릭터를 설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사람이 모여있는 집단 역시 단순하게 파악하고 접근할 수 없다.
오직 예쁘다는 이유로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히는 것은 ‘게이미피케이션’이 아니다. 사이가 좋지 않은 두 사람의 관계를 무작정 앉혀놓고 화해를 바란다고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다. ‘게이미피케이션’은 복잡한 개념이며, 막연히 경쟁을 통한 동기부여, 생산성 향상, 팀워크 훈련을 단순한 해결하는 도구가 아니라,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시도다.
‘게이미피케이션’의 제대로 된 영향력, ‘게임을 기반으로 한 솔루션’을 사용하려면 목표가 무엇인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무엇인지, 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게이미피케이션'이 적합한 도구인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저기서 쓰니까 잘 되던데. 여기서도 잘 되겠지’ 같은 인식은 지금까지 언급한 ‘게이미피케이션의 나쁜 사례’만을 남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