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하면 이겨야지!

오버워치'의 캐릭터 '송하나'의 대사 "게임을 하면 이겨야지"는 모든 국가에서 한국어로 재생된다. 사진출처 : 블리자드

'오버워치'의 한국인 캐릭터 '송하나'의 이 대사는 모든 FPS의 목적을 관통한다. 게임은 재밌으려고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이겨야 한다. 내가 아무리 트롤짓을 하든, 민폐를 끼치든, 버스를 타든, 어떻게 되든 결국 이기기만 하면 재밌다.
 
이 말을 바꿔보면 재미를 위해서는 게임을 '이겨야만 한다'가 되고, 어떻게든 상대방을 밟거나 죽여서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게이머들은 '게임을 하면 이겨야 한다'는 말과 다르게, 승리하지 못했더라도 재미있었고 감동을 느낀 순간 하나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에서 이긴다는 것 '우승' '승리' '당신이 이겼습니다' 는 어떤 의미일까? 이번에는 '게임은 꼭 이겨야 할까?' '상대방보다 뛰어나야만 하는 걸까?' 를 다뤄보려 한다.


1:1 로템 초보만

내가 어렸을 적, 오락실이나 DOS에서 마주하던 게임들의 목적은 단순하고 원초적이었다. NPC를 죽이거나, 다른 사람보다 더 빠르게 게임을 깨거나, 더 높은 점수를 얻는 것이었다. 커뮤니티 사이트, 유튜브, SNS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보니 누가 더 확실하고 많은 공략을 알고 있는지가 중요했다.
 
'네가 말한 대로 하니까 안되던데?'와 '네가 하라는 대로 하니까 되더라'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 또래에서는 그런 지식이 곧 지위나 마찬가지였다. 남들보다 많이 안다는 것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과 다름없었다.
 
2000년대 초반, 전국 팔도에 ADSL이니, VDSL이니 하는 초고속 인터넷이 깔리면서부터, 한국의 젊은이들은 마치 경쟁에 목말라 있었던 것처럼 자신의 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군웅할거의 시대였다. 그때부터는 컴퓨터의 NPC가 아니라 랜선 너머의 다른 게이머를 상대해야 했다. '패든가 맞든가' 둘 중의 하나였다. 게임에서 이긴다는 것은 여전히 명료했다.
 
바로 '누가 먼저 GG를 받아내는가' 였다.

`스타크래프트`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지위나 신분만큼 중요했었다.
`스타크래프트`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지위나 신분만큼 중요했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보다 더 높게'라는 전통은 이어졌고, 게임을 좋아하던 10대들은 그 규칙이 당연한 줄 알았다. 무조건 이겨야만 했고, 어떻게 해서든 끝판왕을 깨야 했고, '나는 백 원에 막판까지 갔어'를 자랑스럽게 뽐내야 했다. 교실에서 벗어난 PC방과 오락실에도 경쟁은 계속됐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부담스러워하거나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공부의 경쟁은 싫지만, 게임에서의 경쟁은 누구보다 열정적이던 애들은 프로게이머를 하겠다고 떠들어댔다. 내가 기억하는 2000년대 초반 '교실 밖 이데아'의 모습은 그랬다.

한국의 많은 젊은이가 게임의 ‘우승’을 향해 젊음을 불태우던 시절이다.
한국의 많은 젊은이가 게임의 ‘우승’을 향해 젊음을 불태우던 시절이다.

게임 좀 한다는 젊은 친구들이 모두 모여, 누가 정말로 잘하는지를 겨루는 대회가 점점 많아졌고, 이를 TV에서 중계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TV에 나와 게임을 하는 젊은이들을 프로게이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게임을 직업으로 하는 프로게이머에게 패배는 낙인과 같았다. 그들은 어떻게든 이겨야 했고 리그에서 우승해야 했다. 
 
프로게이머들의 군웅할거 시대는 단순한 불장난이나 유행에 그치지 않았다. 시대적 반향은 뜨겁게 불탔고, 아직도 그 열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제 한국의 어린 친구들이 프로게이머가 되어 해외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다.
 
무엇보다 그 시절을 제대로 겪고 자란 세대가, 지금은 이제 부모가 되어 '프로게이머가 꿈'이라는 자식들과 함께 경쟁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게 부모와 자식 간에도 '승리' 앞에서는 봐주는 게 없는 시대로 이어졌다.

연승과 승급은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고 뿌듯하다. 게임 ‘스타크래프트 2’ 

 


존버는 승리한다

과거와 달리, 최근 출시되는 게임들은 게이머에게 다양한 목적의 승리를 던져준다.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규칙과는 다르게, 변화한 의미의 승리도 등장하고 있다. 예전에는 그 길이 명확했다면, 이제는 좀 더 다양하다. 
 
'배틀그라운드'는 전 세계의 게이머들에게 '싸우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를 확실히 알려준 게임이다. FPS, 그것도 1VS99의 라는 배틀로얄에서 '전투'는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제 게이머들은 '존버' ('HODL'또는 'hang in there'의 뜻이 있다고 합니다. 게임에서의 투자에서 쓰이는 의미보다 '그냥 숨어서 버틴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의 뜻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됐다. 총을 들고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지만, ‘존버’만 제대로 한다면 플레이어는 총 한 자루 쥐지 않고도 오로지 승리할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다른 플레이어와 경쟁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는 게 통하는 FPS는 생소했지만, 게이머들은 이에 열광했다. 물론 '퀘이크'나 '카운터 스트라이크' 같은 FPS 게이머들에게 이런 플레이는 얍삽한 겁쟁이처럼 보일 것이다. 

'배틀그라운드: 뉴 스테이트' 사진출처 : PUBG
'배틀그라운드: 뉴 스테이트' 사진출처 : PUBG

100명 중에서 최후의 1인으로 생존해야 하는 배틀로얄 장르라면, 당연히 '남을 죽여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규칙이 강하게 적용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총을 들지 않고 도망간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반칙이고, 편법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개발자들은 애초에 경쟁을 피할 수 있는 요소를 의도적으로 설계했다. '이렇게 해서 이길 수 있으면 해봐'를 제시한 것뿐이다.
 
할 수는 있지만 쉽지는 않다. 당연히 게임을 보는 눈과 판단력, 움직임을 받쳐줄 피지컬이 필요하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것을 지켜보고, 요리조리 잘 피하기 까지엔 사실 많은 노력과 운이 필요하다. ‘배틀그라운드’는 이런 플레이를 할 수만 있다면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FPS의 미덕을 깨부수는 파격적인 규칙 덕분에 ‘배틀그라운드’는 총 싸움에 서툰 게이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제 스트리머들은 '총알 한 발도 안 쏘기, 아이템 파밍 안 하기' 같은 미션을 걸어 놓고, 시청자들과 내기를 한다. 100명이 모여 서로에게 총구를 겨눠야만 하는 게임인데, 이것을 의도적으로 피해서 살아남은 방식에 많은 게이머가 열광한다.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승리'를 쟁취하는 데도 말이다.


지는 게 더 이득인데?

게임에서 할 수 있다고 해서, 모든 게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설계가 잘못된 게임은 원래의 의도와 다르게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버리기도 한다. 게이머들은 영악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의도적인 회피'의 저울이 조금만 휘청거려도 편법을 악용한다. '어뷰징'이다.

게임판에서의 어뷰징은 게임에서 해서는 안 되는 플레이를 반복하는 행위다. 악의를 가지고 누군가에게 계속 져준다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패배를 한다거나, 아예 게임 자체를 피하는 것이다. 하스스톤'의 '용병단' 콘텐츠에서는 승리의 가치를 역행하는 하나의 현상이 퍼져나갔다. 1:1 카드 게임은 무조건 상대방을 이겨야만 한다. '존버'도 통하지 않는다. 무작정 버티면서 밧줄을 태우는 것은 지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게임의 잘못된 설계로 인해, 게이머들은 승리가 아닌 패배를 선택했다. 더 많은 패배가 결국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을 찾아낸 것이다. 게임을 하면 이겨야 하지만, 이기는 것이 오히려 손해가 되는 상황. 게이머들은 '보상을 위해 빠르게 패배하는' 이른바 '항복런' 을 선택했다.

오로지 보상을 목적으로 하는 '항복런'. 게임의 목적이 '보상'으로 바뀐다면 이렇게 개발자의 의도와 전혀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튄다. 그만큼 '설계자'는 신경 써야 할 것도 많다. 게임 '하스스톤'
오로지 보상을 목적으로 하는 '항복런'. 게임의 목적이 '보상'으로 바뀐다면 이렇게 개발자의 의도와 전혀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튄다. 그만큼 '설계자'는 신경 써야 할 것도 많다. 게임 '하스스톤'

게이머들은 보상을 더 빠르게 얻기 위해 승리 대신 반복적인 패배를 노렸다. 결국 게임은 '누가 먼저 빠르게 항복을 누르고, 보상을 챙겨가는가'로 바뀌게 됐다. 이렇게 얻는 승리에는 아무런 재미도 감동도 없다. 게임 시작과 동시에 상대방이 나가버린다면 '승리'라는 그 목적은 달성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은 모두 생략된다. 이는 결국 '하스스톤'이라는 게임이 추구하는 가치와 완전히 반대되는 모습이 된 것이다.

모든 게임의 목적이 승리인 것 같았지만, 보상이 연관되고 이로 인한 페널티가 없다면 게이머들은 항복을 선택한다. ‘하스스톤’의 목표는 '상대방을 명치를 박살 내세요'혹은 '상대방을 빡치게 만드세요' 인데, 만나자마자 '난죽택'이나 '저훨강'을 해버리는 게 미덕이 되어버렸다. 

물론 빠르게 핫픽스 되었지만, 설계자의 의도가 빗나간 게임이 어떻게 변질되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다. 게이머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면 주저 없이 패배를 택한다.

보상 앞에서는 적도 아군도 의미가 없다.
보상 앞에서는 적도 아군도 의미가 없다.
하스스톤의 근본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져봐야 한다 

'네임드를 잡는 것은 결국 수많은 헤딩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오랫동안 플레이해온 내 생각이다.
 
'와우'에서의 승리가, '배틀그라운드'나 '하스스톤'과 다른 점은 '호흡'이다. MMORPG에서의 승리는 '빠르게 결과가 나오는 한판'이 아니라, 일종의 '여정' '성장' '도전' 과 같다. 앞서 언급한 FPS나 배틀로얄, TCG는 단판으로 승부를 볼 수 있지만, MMORPG의 호흡은 길다. 그래서 승리에 도달했을 때의 느낌도 다른 게임과는 다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승리도 패배도 아무것도 얻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오늘은 막페까지 봤네요. 다음 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달초 보내드릴게요.”

몇 주째 똑같은 보스를 9시간 10시간씩 트라이하다 보면, 이거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고, 거의 잡은 기회를 누군가의 실수로 놓쳐버리게 된다면, 서로를 미워하고 의심하는 인간혐오에 걸리기도 한다.
 
승리로 향하는 길은 멀고 험하다. 얻는 것도 없이 좌절과 패배만 계속될 뿐이다. 그래서 많은 게이머가 협력해야 하는 레이드나 던전 플레이에선 '결국 잡았다'가 아니라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 

수십 수백 번의 전멸은, 하나씩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결국 이런 시간이 모여 '값진 승리'에 도달한다.
수십 수백 번의 전멸은, 하나씩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결국 이런 시간이 모여 '값진 승리'에 도달한다.

온라인 게임에만 한정된 것도 아니다. '소울류'(Dark soul류의 게임)의 게임에서는 수많은 트라이를 반복해야 한다. 그렇게 들이박으면서 보스를 못 잡아도, 게이머는 실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YOU DIED'를 즐긴다. 오히려 보스가 '원트'로 쓰러져버린다면 실망할 것이다. '아니 고생하러 왔는데, 게임이 왜 이렇게 쉬워?' 게임의 목적은 겉으로는 '이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영악한 게이머들은 '쉽게 이기길' 바라지 않는다. 
 
'나를 실망시켜봐! 나를 좌절시켜봐!'의 그 과정 자체를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게이머들에게 단순히 '이기는 것' 자체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 과정이 어땠는지가 중요하다. 나의 플레이 영상을 남들이 봤을 때 열광할 수 있을 것인가? 내 플레이는 '생전 고인의 개쩌는 플레이를 보시겠습니다'라며 장례식장에서 틀 수 있을 정도였는가? 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여정이 없다면, 그 게임은 망겜이 된다. 게임을 만드는 설계자들, 그리고 게이머들도 단순히 '김빠진 밍밍한 승리'를 원하지 않는다. '좌절과 절망과 처절함과 수많은 패배 뒤에 찾아오는 단 한 번의 승리', 바로 '너드 스크림' 같은 짜릿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쨌든 게임이라는 것은 누군가는 이기고, 또 누군가는 패배한다. 게임의 목적은 결국 정해진 규칙에서 누가누가 잘했나를 가려보는 재미있는 행위니 말이다. 그렇다면 게임에서 이기지 못하는 것은,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라는 말처럼 '1등' '우승' '승리'를 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졌지만 잘 싸웠다

누구나 승자가 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정해진 승리만을 좇지 않아도 된다. 이긴다는 것 보다는 그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하다. 때로는 패배하더라도 우승보다 더 깊은 감동과 재미가 담겨있을 수 있다. '우승'은 종착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이정표다.
 
브론즈, 실버 티어의 게이머들과 뉴비들은 승리보다 패배에 더 익숙하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상위 티어에 있는 게이머보다 더 열정적이다. 한 걸음씩 승리에 다가서면서 자신의 실력을 높이는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승리를 향하는 과정, 꾸준히 반복할 수 있을 만한 동기부여와 자기만족.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승리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게이머들에게 '막판'의 의미란 "1.양 팀이 아슬아슬하게 승기를 주고받으면서, 2.말도 안 되는 한타가 나오고, 3.그로인해 역전을 만들어 내면서, 4.내가 주목을 받고. 5.승리한 게임"인데, 승리란 이 과정과 거의 같다.

알파고 VS 이세돌 사진출처 : 구글 딥마인드
알파고 VS 이세돌 사진출처 : 구글 딥마인드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을 본 사람들은 '인간이 AI를 이겼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은 '반대로 생각하면 처음으로 AI에 패배한 것도 자신'이라고 말했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이세돌 9단은 알파고에게 단 1승만을 거뒀을 뿐이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4:1로 알파고에게 패배했다. 이 패배로 이세돌 9단은 은퇴를 결심했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도 많은 패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패배의 경험을 통해 이기는 법을 배운 것이다. 그렇게 78수가 놓였다.
 
많은 사람이 이세돌 9단의 패배보다, 제4국에서 거둔 1승을 기억한다. 대국 전체를 두고 보면 사실상 패배한 것이지만, 그 단 1승으로 인해 알파고에 이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결과는 1승 4패였지만, 이세돌 9단의 1승은 '인류 최초의 승리'라는 값진 의미로 남았다. 그는 알파고에 졌지만,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패배는 언제나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승리는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우승, 승리를 향해 오늘을 산다. 게임에서나 인생에서나 중요한 것은 그 목적지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계속 실패하고 패배하는 것에서도 우리는 우승 이상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말장난 같지만, 패자가 있어야, 승자가 있는 법이다. 패배가 없으면 승리도 없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나에게 이긴다는 것은 '네가 추구하는 승리가 나보다 뛰어나지 않으며, 내가 이뤄낸 승리 역시 너의 패배보다 값진 것은 아니다'의 의미다.

 

이 글은 영국의 게이미피케이션 매체 'Ludogogy'에 영문으로 송출되었습니다.

https://www.ludogogy.co.uk/article/i-play-to-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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